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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07.27.) 중앙일보 오피니언 📰[시(詩)와 사색] 뼈아픈 후회신문스크랩/오피니언 2024. 8. 7. 12:45반응형
[시(詩)와 사색] 뼈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神象)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페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사 1998)
우리는 삶의 많은 순간에서 후회를 예감하며 어떤 일을 벌입니다. 밥 한 공기를 다 비우고도 한 주걱을 더 담는 일. 밤 아홉 시에 커피를 마시는 일. 참고 삭혀두었어야 할 말을 결국 상대에게 건네고 마는 일.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일. 후회가 뼈아픈 것은 나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시 새롭게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어쩌면 똑같은 선택을 하겠지요. 후회를 감내하고 시작하는 일, 그래서 결국 끝은 보고야 마는 일. 앞서가고 또 뒤따라오는 후회들과 발맞추어 걸으며. 깨우치며 또 뉘우치며. 뉘우치며 또 깨우치며.
박준 시인[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6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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